사랑을 나누는 집,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
기쁘게 만나는 운동장, 하느님을 배우는 성당

소식지

열린광장
2013년 9월 소식지입니다.
  • 작성자 : 관리자
  • 조회 : 5123
  • 작성일 : 2013/10/11

소  명(召命)

서상진

  제가 돈보스코 직업훈련원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는 성경구절이 제가 받은 소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현 시대에 가장 가난한 이들은 바로 청소년이라고 저는 판단되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태아교육, 취학 전에 조기교육, 영어교육,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학원을 두 세군데 이상 다니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뛰어 노는 아이들, 중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이 우수하지 않으면 마치 인생의 패배자처럼 보는 부모와 교사들의 시선들, 대학에 가서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전공을 뒤로 한 체 연봉이 높은 학과, 안정적인 직업을 위한 학과로 가는 아이들이 아마 이 시대에 가장 가난한 아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정에서 버려지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오직 친구들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아이들이 미래를 일찍부터 포기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그들에게 자립하는데 있어 조그만 힘이라도 되자는 동기에서 돈보스코 직업훈련원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어느 덧 1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짧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임상심리상담원으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시간마다 운동도 하고 2박3일 캠프도 다녀오면서 조금씩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입사하는 첫 날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저의 행동에 아이들은 어색함과 동시에 경계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몇몇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며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이 어디에요?”,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여기서 얼마나 일하실거에요?”, “차는 뭐 타고 다녀요?” 등 올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기분 좋은 관심을 느끼면서 돈보스코 직업훈련원에서의 첫 날은 저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먹고 있던 과자를 사무실에 와서 제게 주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끔 생각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곳에 와서 제가 뭔가를 아이들에게 주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달이 흐른 후, 아침에 출근할 때 마다 사무실에 와서 해맑게 인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 수업시간마다 놀고 싶다고 하면서 집중하지 않는 척 하지만 곁눈질로 선생님이 뭘 하는지 관찰하는 아이들, 축구나 탁구 등을 할 때 미리 라켓이나 공을 가지고 함께 놀자고 무섭게 뛰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끼리 싸우는 소리에 책상 앞 의자에서 수십 번을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피나고 다치고 멍들었다고 약 달라고 조르면서 사무실을 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라는 시간은 정말 짧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날수록 이 아이들이 제게는 가족처럼 형제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곳을 본인이 스스로 택한 아이도 있고 권유에 의해서 온 아이도 있고 강압적으로 온 애들도 있지만 이곳을 퇴소할 때는 멋진 웃음과 함께 가장 부유하고 온유하며 늠름한 사람이 되어 훈련원의 품을 떠나보낼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아이들과 이 시간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